프로젝트 Project

한일터널 구상과 세계평화 실현에 대한 비전

한일 터널 프로젝트 시작

1981년 11월 10일 한국 서울에서 제10회 '과학의 통일에 관한 국제회의'(ICUS)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는 전 세계에서 노벨 수상자를 비롯한 각 분야의 자연과학자, 인문·사회과학계학자, 문화인 등 총 720명이 참가했다. 그 전체 회의에서 동회의 창설자인 문선명사가 '아시아 대 고속도로 및 한일터널 구상'을 제창받았다. 이 회의에는 일본으로부터 니시호리 에이사부로씨(일본 산악 협회 회장)가 참가되어 있었지만, 국제 고속도로·한일 터널 구상에 접해, “자신도 상당히 큰 것을 말해 왔지만,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스케일 그렇다고 하고 싶은 감명을 받았다.
 
니시호리 에이사부로씨는 일본으로 돌아오자마자, 「일본에서도, 한일 터널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주장되어, 「한일 터널 연구회」(니시호리씨의 소개로 사사보오씨(홋카이도 대학 명예 교수) )가 회장)이 1983년 5월 도쿄에 창설되었다. 니시호리씨와 사사씨는 같은 사단법인·일본산악협회의 회장을 담당한 인물로, 전 회장(제13대)과 다음의 회장(제14대)이라고 하는 관계였다. 사사 씨는 지질학의 권위로, 세이칸 터널의 루트를 선정한 중심 인물이었고, 한일 터널 연구회에는 딱 맞는 인물이었다.

아시아 대형 고속도로 구상

여기서 '아시아 대 고속도로 및 한일 터널 구상'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싶다.

 
문명사의 변천을 살펴보면 인류의 고대 문명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 열대 문명에서 시작하여 그리스 로마의 반도 문명으로 이행한 후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섬 학문명으로 옮겨 , 대영 제국을 중심으로 해양 문명이 세계를 석권했다. 게다가 문명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상륙해, 대륙 문명으로서 결실.

미국은 그 혜택을 받아 200년여 세계 최강 최대 국가가 될 수 있었다. 미국 내에서도 동부에서 서부로 개척이 진행되어 태평양에 도달하자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 이르렀다. 일본에 상륙한 서양문명은 120년의 기간을 거쳐 옆의 한반도로 옮겨갔다. 그 상징적 사건이 1988년 한국에서 개최된 서울올림픽이다. 즉 아시아에 경제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한가운데 물류의 대동맥인 평화고속도로·평화고속철도 등의 인프라를 정비하고 일본에서 한국·북한을 거쳐 중국에 이르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건설 해 나간다는 구상을 내세운 것이다.

번영의 120년이 지난 일본은 당시 더 번영을 누릴지 쇠퇴의 길을 걷는지의 기로에 서 있었다.

추가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은 문명사적으로 보고 한반도와 육계가 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이 되돌아 보면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일본은 버블의 붕괴, 경제의 낮음, 정치는 혼란스러워, 인심이 흐트러져 범죄가 격증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아시아의 평화와 경제 기반 실현의 비전

한일관계는 역사적으로 은혜관계에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양국 사이에 '사랑의 걸교'를 가하여 평화의 터널을 만들어 양국간에는 진정한 평화가 태어난다 .
한일이 결속되면 구미와 함께 태평양의 섬도 국가 제국군도 협력해 온다.

일찌기 메이지 유신으로 사이고 다카모리에 의해 에도성이 무혈 개성된 것처럼 북한도 무력에 의한 남진 정책을 버리고 평화적으로 남북을 통일하는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통일도 실현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시아의 평화가 유지될 뿐만 아니라 세계 제일의 경제권이 태어나게 된다.

새로운 이념에 의한 경제기반의 확립이다. 아울러 고속도로망을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함으로써 아시아 공동체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 때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국경이며 인종, 민족, 사상 등의 대립이다.

그 '벽'을 타파하고 평화적으로 하나가 되도록 리드해야 한다. 그야말로 일본이 주도권으로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며, 일본이 평화외교에 철저히 아시아를 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정신적 지주는 고차원적인 정신이어야 한다. 도버 해협의 영국 불 터널은 영국 불 양국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되었고 그 후 4년 만에 관통했다.

그 기술의 대부분은 일본의 터널 기술을 사용했다. 영국불터널이 생긴 직후 유럽연합(EU)이 탄생했다. EU의 탄생에 의해 역내를 노비자로의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통화도 유로로 통일되었다. 마찬가지로 한일터널이 관통하면 동아시아 공동체, 그 앞에는 아시아 공동체가 보인다.

장래는 공통 통화도 탄생할 것임에 틀림없다. 동아시아 공동체만으로도 세계 제일의 경제권이 되고, 아시아 전체가 되면 더 큰 경제권이 된다. 이러한 혜택을 세계로 확대시켜 나간다. 고속도로의 건설은 세계평화를 실현하는 구체적 방안이다.

역사상 지금까지 '세계평화'가 몇번이나 구해져 왔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 나가면 실현될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고속도로 건설이라는 방안에 의해 세계평화는 실현되는 것이다. 정신적 기반과 경제 기반의 쌍방이 함께 세계 영구 평화가 실현된다. 그 출발점이 '한일터널'이다. '한일터널'은 세계평화의 발신기지 입구이다. 이에 대해 일본이 기술력과 경제력으로 공헌하면 침략국가라는 오명은 되돌아가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게 된다. 일본에 더 이상 희망은 없다. 이것이 일본이 가야 할 길이다.

초대 이사장·회장 소개

초대 이사장 · 회장
고 카지 쿠리 타로

약력

1982년 국제 고속도로 프로젝트·한일 터널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제 고속도로 건설 사업단을 도쿄에 설립, 이사장을 역임.
2009년에는 새롭게 일반재단법인 국제하이웨이재단이 설립되어 초대이사장·회장을 역임했습니다.
 
2012년 12월 26일 오전 6시 10분, 서거, 향년 75세.

1937년 후쿠오카현 출생, 시바우라 공업 대학 토목 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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