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 Road monthly magazine

한국도 '한일터널 추진위'를 만들어야 한다

제22회 피스로드 포럼 특강

한국도 '한일터널 추진위'를 만들어야 한다

 

미조하타 히로시, 전 일본 관광청 장관이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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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하타 히로시 전 일본 관광청 장관이 서울 반포동의 JS 메리어트 호텔에서 특별 강연을 실시한다

바쁜 가운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89번째 방한이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신뢰하고 존경하는 친구인 팡보강(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실장)도 여기에 와 있습니다. 황보강과 나는 1995년 서울에서 만나 2002년 한일 월드컵과 입명관 아시아태평양대학 창립 등에서 협력했다.

그리고 일본의 오이타현에서 축구대회를 개최하고 우승할 때까지 함께 일을 하고 한·일 양국을 연결하는 의형제 관계를 구축해 왔다. 저는 한국 분들과 많은 일을 함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한국 분들에게 감사하고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국가를 좋아해서 애국가를 먼저 부르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조금 지나쳤지만 애국가의 제일을 끝까지 노래한다)

 

한일터널은 한국 최대 사업

나는 교토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을 졸업 후 일본 발전의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총무성에 입성해 공무원을 시작했습니다. 총무성에 있을 때 간접세를 도입하여 양호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유럽에도 잠시 동안 갔다. 지금은 한국, 중국, 일본의 동북아시아 3개국이 긴밀하게 교류하면서 상호 평화와 번영을 이루게 하는 것이 나의 인생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습니다.

 

한일 터널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내가 홋카이도에 발령을 받았을 때 홋카이도와 아오모리 사이에 세이칸 터널이 개통했습니다. 홋카이도와 아오모리의 경계선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입장에서, 세금을 어떻게 과세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양쪽의 지자체간이 매우 민감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테두리 길이는 세금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의견 충돌이있었습니다. 4개월간 격론이 이루어졌지만, 그 후는 서로 존중하는 자세로 바뀌었습니다. 홋카이도와 아오모리 사이의 교류 방안이 폭넓게 논의되어, 양 지역을 연결하는 신칸센이 개통해 아오하코 터널이 쌍방에 있어서의 대동맥이 되었다. 당시 해저터널의 개통이 지역교류에 얼마나 기여하는 것인가를 실감했습니다.

 

이후, 오이타현에 갔을 때에는 오이타현과 에히메현을 연결하는 구상이 나오고, 이것도 내가 담당했습니다. 규슈와 시코쿠를 다리로 연결하려는 프로젝트였지만, 스포츠와 문화, 경제 교류도 뒤를 이었다. 이때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규슈와 한국을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생각이 더욱 강해진 것은 오이타에 갔을 때였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에 대해 오이타현의 책임자로서 대회 활용 방안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때 한국과 일본은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나는 오이타현의 프로축구팀을 창설하려고 생각하고 축구장을 만들고 한국에서 관광객 3만명을 유치하면 경제도 활성화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한일터널이 개통하면 한일 양국의 교류가 활발해져 한국 관광객 유치가 용이해지는 것입니다.

 

한일터널에 대해 더 논의하기 전에 내 한국인 친구, 판보강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한일 월드컵 대회에 앞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야구장을 개축해 축구 경기장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협상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관계자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일과였습니다. 사람은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특히 지도자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의 백 배의 땀을 흘려야합니다. 아무래도 일본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일했습니다. 그때 대한축구협회 문종식 부회장과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유럽에 있었을 때부터 유럽의 축구 팀을 응원해 축구 경기도 잘 보러 갔습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1976년에 국립 경기장에서 한일 축구전이 행해져, 일본이 3대 0으로 졌습니다. 한국에는 키가 큰 선수도 있어, 기량면에서도 일본이 한국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한국 축구는 인상 깊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이타현에서 축구팀을 만들 때 브라질이나 네덜란드 팀보다 일본에 가까운 한국을 찾아 협력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한일 양국은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경쟁의식이 높아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월드컵에서 일본이 져도 나중에 서로 협력하는 날이 오기도 하므로 한일간의 감정 등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한축구협회의 협력을 얻어 축구팀을 창설하게 된 것입니다.

 

문종식 부회장에게는 여러가지 신세를 졌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이탈리아에 내가 가서 TV를 붙였을 때, 스페인과 한국이 대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필드에서 종횡무진의 활약을 해 멋진 골을 정하고 있던 한국인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여기에있는 판보 강입니다.

90년대는 일본이 월드컵 예선에서 언제나 탈락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언제나 돌파하고 있었습니다. 판보강 같은 선수들이 한국 축구를 돋보이게 했다. 95년이 되어도 일본은 약했다. 문종식 부회장에게 황보강 선수를 데려와줬으면 했는데 즐겁게 소개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1995년 12월 23일 서울이 있는 호텔에서 한국의 슈퍼스타, 판보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 없이 판보강에게 아시아를 대표하는 팀을 만들려고 제안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창설하는 팀은 재정도 부족하고 축구 경기장도 없다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황보강은 이해관계를 벗어나 기뻐하며 오이타에게 왔습니다. 이듬해 오이타의 축구팀을 만들고 2002년에는 월드컵을 성공으로 이끌려고 의기투합했습니다.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은 일본 최초의 국제대학이며 울산대학의 명예학장인 종몽준 씨 협력으로 이 대학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오이타 트리니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나 정치, 경제계 등 많은 분들의 협력을 얻어 우정도 태어났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스포츠 교류가 그 때부터 크게 진전했습니다.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 그때 한일 월드컵 관련으로 한국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한국은 전국적으로 좋은 문화가 있고, 일본이 배워야 할 문화가 많다는 것을 알고, 나는 그 후 많이 배웠습니다. 영양, 균형, 발효 등 우수한 한국식 문화에도 매우 감동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인정과 고령자에 대한 존경심이 인상 깊었습니다. 힘들고 힘들 때 황보강을 비롯한 많은 한국 분들의 협력과 지지를 얻었습니다. 밝게 보이지만 머리카락도 빠져 이혼도 하는 등 매운 시기를 경험했습니다. 그럴 때 저를 도와주신 사람이 황보강이었고 많은 한국 분들이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일본을 세계에 선전하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국과 일본 축구의 교두보가 되어 14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일본 축구는 아시아 정상에 올라갔습니다.

 

오이타 트리니타를 창단했을 때 한국 축구협회와 약속을 했습니다. 일본 국내에서 이기면 우승 컵을 가지고 한국에 인사에 가겠다고 했습니다만, 2008년에 그 꿈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우승컵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다음 해 2009년에는 우리 팀은 최하위가 되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매우 피폐하고 많은 분들로부터의 꾸짖음도 받았습니다. 그 후, 팀의 단장을 그만두고, 정부 공무 복귀의 사령을 받아 2010년 관광청 장관에 취임했습니다. 오이타현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월드컵 관련의 많은 프로젝트에 종사해 온 인연으로, 재차, 일본이 세계를 향해 선전하지 않으면 하는 마음으로 취임했습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것이 5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하나가 아름다운 자연입니다. 일본은 국토의 70%가 삼림이 되어 있어 안락하고 청결합니다. 이것은 건강과 장수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본은 세계 제일의 장수국입니다. 옛날부터 물건을 잘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세계를 장악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발굴-연마해 세계에 진출하면 각 지역의 발전을 활성화시켜 일본 전체를 활기차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일본과 중국, 한국이 서로 교류 인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2014년 일본의 한 데이터에 따르면 한·중·일 3개국의 교류 인구가 순조롭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평창에서는 관광청 장관회담도 개최되었습니다. 회담 기간에 평창에서는 300명분의 비빔밥을 만들어 방문자들이 함께 먹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분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동일본 대지진 때 피해자들은 매우 피폐하고 있었지만, 어디보다 빨리 한국의 분들이 달려 많은 도움을 준 것입니다. 여행 관계자들은 일본에 관광객을 보내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감사합니다. 동일본 대지진 때 가장 많은 협력을 받은 일본 분들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중국 경제가 더욱 성장하고 한·중·일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한일터널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한·중·일 교류가 가속화됩니다. 2018년 평창에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은 결과적으로 한·중·일 관광문화진흥을 촉발할 수 있다. 일본에서의 2019년 럭비 월드컵, 2020년 도쿄 올림픽 등으로 연결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빅 이벤트는 한·중·일의 교류를 크게 확대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향후의 한·중·일의 교류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심각한 과제입니다.

 

아시아 인구가 40억 명을 돌파했다. 2030년에는 55억명이 됩니다. 한·중·일을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견인해 아시아 전체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지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역내에서는 물론, 세계경제발전에 있어서 중대한 과제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향후 10년의 경제성장을 위해 제4차 산업혁명, 재생에너지, 주택 리모델링 등 10개의 계획이 책정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전체 생산성을 높여 세계에 연결하려고 합니다. 아시아 각국과의 새로운 유통과 수출관광 분야를 증대시키면 한일터널 프로젝트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일터널과 관련하여 관광청장관 때 많은 분들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경제계에서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한일터널에 관해 많은 분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한일 터널이 한·중·일의 교류관계를 증진,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도 일본도 성장률이 계속 감소하고 있어 경제부흥을 위해 다이나미즘(활력)이 필요합니다.

평범한 노력으로는 안됩니다. 모든 사람이 최대한 생각하고 힘을 집결시켜야 합니다. 유라시아를 하나의 시장에 연결시킨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야 합니다. 아시아 다이나미즘으로서는 한일터널이 세계경제의 면에서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 이상의 의의를 가지고 장기적인 경제교류효과는 월드컵을 넘을 것입니다.

 

일본도 매우 인구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제 성장의 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경제의 큰 흐름을 새롭게 일으킨다는 측면에서 한일터널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일터널은 양국의 정치, 경제, 스포츠, 문화의 발전은 물론, 관광, 유통, 기술발전, 인재육성, 지역진흥, 동북아시아의 평화 등 전방위적으로 막대한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내가 한일터널과의 관계를 맺은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일본에서는 전국 47도도부현 중 34부현에서 민간협의회로서 일한터널 추진협의회가 조직되어 있어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지도자 등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일터널 문제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정도로 더욱 활성화될 것입니다.

최종 목표는 한일 터널이 정부의 프로젝트가 되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한·중·일 관계장관급회의에서 순회회담을 개최하고 협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일본은 꾸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터널 계획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전체적으로 새로운 기운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읍·면·길, 그리고 서울에서도 이 프로젝트의 추진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대통령도 이를 생각해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한일 월드컵에서도 한일 지도자가 거의 매일 모여 협의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일 터널이 언젠가 실현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언제까지 실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일을 진행합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프로젝트에서는 아무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한일터널을 2020년까지 한일정부간 협약을 채결하고 2030년까지 반드시 공사를 착공한다”는 계획을 세워 서로 확인해 나가야 합니다. 향후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과 2020년 도쿄 올림픽, 그리고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등 세계적인 대회가 아시아에서 개최됩니다. 큰 스포츠 이벤트를 실시하는 성과로서 한일 터널 건설 계획을 추진하자는 한일 양국의 장관 등의 톱 클래스에서의 논의가 이루어져 플랜을 작성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은 혼자서 시작됩니다. 나는 이것을 하려고 생각하고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도 끝까지 해 나가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일터널의 가치를 아는 한사람 한사람이 한국과 일본의 미래를 위해 힘을 나누자는 의식으로 제대로 협력하면 이 프로젝트는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한일터널 착공을 위해 협력한다』

지금 한국은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일본도 대도시의 경제는 성장하고 있지만, 지방도시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일 양국은 대도시와 지방도시의 격차로 공통의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2030년까지 한일터널을 착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월드컵 정신'으로 돌진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한일 양국은 미래를 위해 밝은 기운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비즈니스를 해 나가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일터널이야말로 양국의 최대 사업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의 많은 분들에게 몹시 신세를 졌으므로, 그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로 한일의 교류와 경제 활성화의 선두에 서 가고 싶습니다. 오늘의 만남을 통해 한번 한일 터널이 개통할 것을 기원합니다. 저도 일본에서 미력입니다만, 협력하겠습니다.

 

<이 문장은 지난 7월 17일 서울반포동의 JS 메리어트 호텔에서 개최된 '제22회 피스로드 포럼'에서 미조하타 히로시(오사카 관광국 이사장, 57세), 전 일본 관광청 장관이 「한일터널은 동아시아의 경제교류의 다이나미즘」이라고 하는 주제로 행한 강연의 내용으로부터 발췌해 게재한 것입니다. 〉

 

 

 

미조하타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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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학 법학부 졸업 후, 자치성(현 총무성)에 입성, 오이타현에서 재정 과장, 문화 진흥 과장, 기획부 차장(월드컵·대학 담당)을 역임 후에 국토 교통성 산하의 관광청 장관을 맡아 했다. 현재는 오사카 관광국 이사장, 오이타 축구 클럽 이사 등의 임무에 대해 일본의 관광산업 발전과 스포츠 진흥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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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한일터널 추진위'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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